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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책/조선 태조 이성계의 대업 2007.09.04

출처: 매일신문



[매일신문/ 9월 1일] 책/조선 태조 이성계의 대업 - (Online) 난세의 영웅은 어떻게 탄생할까 조선 태조 이성계의 대업/ 김성한 지음/ 대성닷컴 해와비 고려의 대군을 이끌고 북으로 압록강 저편 대륙을 향해 진격하다가 위화도에서 발길을 돌려 고려 왕조를 뒤엎고 조선왕조를 창건한 이성계는 어떤 인물일까?. 언론인이자 역사소설가인 저자 김성한은 1960년대 후반에 선보인 소설 '이성계'를 수정·보완해 이 책을 내놓았다. 오랜 시간 숱한 문헌과 사료를 찾아 연구한 끝에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했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흔히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가 우리와 같은 한민족일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어느 일본의 사학자는 이성계가 여진족이라고 하기도 하고, 국내 어떤 학자는 몽골족 출신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단일민족'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세상천지에 단일민족이란 있을 수 없고, 제왕은 같은 민족이어야 한다는 선입견 역시 세계사 전체를 더듬어 보면 일종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성계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이성계는 현재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났고, 성인이 될때까지 그곳에서 자랐으며, 그의 집안은 대대로 천호(千戶: 유목민족의 군사편제 단위, 중급관리) 벼슬을 이어왔다. 칭기즈칸이 나라를 세우면서 국가구성의 기본단위로 삼은 천호는 평시에는 관내 백성을 관리하고 전시에는 관내에서 징발한 병사들을 이끌고 출전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영흥을 포함한 함경도 일대가 원나라의 직할령이었던 만큼 이성계 집안은 원나라의 신하로 살아왔다. 그리고 함경도 일대는 고려인과 여진족, 몽골족 등이 뒤섞여 사는 고장이었다. 자연히 남녀간 서로 혼인도 맺었을 것인 바 이성계를 순수한 고려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잘 알다시피 이성계는 원이 쫓겨난 함경도 일대에서 고려왕조에 충성하며 세력을 키워오다,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지자 평안도와 수도 개경은 물론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까지 출병해 뛰어난 전과를 올린다. 그런데 상황을 곰곰이 되짚어 보자. 오랑캐와 뒤섞여 살며 세력을 키운 이성계의 군대에는 고려인뿐만 아니라 여진족, 몽골족 등이 섞여 있었을 것이고, 25세까지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이성계는 유창한 여진어와 몽골어, (함경도 사투리가 섞인)고려어를 구사하며 군대를 지휘했을 것이다. 전통적인 고려 장수들이 지휘하는 고려인 부대의 입장에서 볼 때, 이성계의 군대는 그야말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외인부대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고의로 한 일은 아니더라도 자연히 따돌림을 받았을 것이고, 아무리 전공을 세우더라도 고려사회에서 그처럼 높은 직에 오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십중팔구 중도에서 말살됐을 가능성인 높은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청년장교 이성계의 운명이었다. 이런 이성계를 지키고 키워준 이는 바로 최영. 당시 이성계가 아버지와 같은 최영을 죽이고 절친한 벗 신숙주를 무참히 참살한 뒤 고려왕조를 뒤엎고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어찌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고려왕조 왕씨 성을 가진 수만 명을 참혹하게 말살한 강화도 강제수용소의 비극과 조선왕조의 창건, 방원의 주도로 벌어진 골육상쟁···. 아들의 반란을 끝내 버티지 못한 이성계는 비애와 분노, 고독, 회한 속에 속세를 등지고 방랑의 길에 나선다. 이성계가 옳았는지, 최영이 옳았는지,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시대의 변화와 양상에 대한 옳고 그름은 각자가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세를 극복하고 새 나라를 세운 불세출의 리더 이성계의 건국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참된 지도자상을 밝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전 3권 각 권 411~418쪽, 값 9천800원씩.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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