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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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제칼럼] 고객을 사랑하는, 고객이 사랑하는… 2007.05.16

출처: 매일신문



[매일신문/ 5월 16일] [경제칼럼] 고객을 사랑하는, 고객이 사랑하는… 이번 5월은 대성이 창업한 지 60년이 되는 달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들의 나이가 40세 안팎이니, 대성이 해방직후 1947년 대구 칠성동에 대성산업사를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 초기 기업사의 새 장을 연 것이었다. 미국의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이 20년 전에 50년이었던 것이 현재는 15년으로 단축된 것을 볼 때, 대성의 6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60년은 인생에서도 한 갑자로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된다. 지난 60년의 대성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면, 해방직후 혼란한 정치상황과 세계 최빈국이라는 암담한 경제현실 속에서 태어났고, 한국전쟁 후의 폐허 속에서도 부활했으며, 한국현대사의 숱한 파동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의 복선과 같이 당시에는 우연한 일이 이후에는 새롭게 전개되는 놀라운 역사를 암시하고 있었고, 이러한 일들이 기업의 사풍과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성의 김수근 창업회장은 50평의 대지에 직원 3명, 인부 10명의 작은 규모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민족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정에서 수천 년간 이어져 온 화목연료시대의 종말과 화석연료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대성은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위기를 맞게 되는데, 바로 1950년 한국전쟁이다. 대성산업사의 임직원들은 불가피하게 부산으로 피란을 가야 했고, 2개월 후 돌아온 대구 시내는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 있었다. 김수근 회장은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사업기반을 상실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전쟁 전에 만들어 쌓아 놓고 간 칠판 창고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창고를 지킨 사람이 연탄공장 옆에서 식당을 하는 할머니였다. 대성산업사가 처음 칠성동에 연탄공장을 차렸을 때, 바로 옆에 자그마한 식당이 있었다. 그런데 이 식당의 주인인 할머니는 석탄을 실어내릴 때마다 날리는 석탄가루와 먼지 때문에 수시로 고함을 질러대곤 하였다. 석탄가루 때문에 식탁이고 음식이 온통 검댕 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석탄가루를 집진할 시설이 없었고, 공장 규모도 영세했기 때문에 김수근 회장은 아무런 대꾸도 못한 채 당하기만 했다.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은 후, 대성의 임직원들은 껄끄러웠지만, 일부러 이 식당을 자주 출입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 식당은 퇴근한 대성 직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후 할머니의 항의나 성화도 없어졌고, 오히려 아주 사이좋은 이웃사촌이 되었다. 요새 용어로 윈윈(Win-Win) 관계가 된 것이다. 전쟁으로 다들 피란을 가도 그 할머니는 대구에 남아 북한군의 파괴로부터 창고를 지켜주었다. 이 경험은 김수근 회장에게 이웃, 고객과의 관계가 사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따라 “고객을 사랑하는 기업, 고객이 사랑하는 기업”이라는 대성의 전통은 이렇게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왔다. 더욱이 이 흑판공장을 시작한 계기도 남다르다. 필자의 모친 여귀옥 여사께서 교회 여집사의 남편이 흑판 만드는 기술자인데 실직하여 집안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돕기 위해 흑판공장을 차리자고 김수근 회장께 건의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대성은 사람을 경솔하게 채용하지도 않지만, 함부로 내보내지도 않는 전통이 있다. 인재를 중히 여기고 끝까지 함께하는 전통은 노동계약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식 경영과는 배치될지 모르지만, 오늘까지 대성의 경쟁력과 화합을 유지하여온 비결이 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학교들이 다시 문을 열었으나, 전쟁 중 흑판을 땔감으로 떼어가버려 수업에 지장이 생겼다. 당시 문교부는 전국에 흑판을 구하느라고 난리가 났고, 재고 흑판을 상당한 금액을 주고 사가지고 갔다. 이 흑판을 판매한 자금을 기반으로 전쟁 후에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더욱이 큰 보람은 전쟁 후에 부족한 흑판을 대량 공급해 전후 교육정상화에도 기여했다는 것이다. 대성그룹이 시작한 것은 연탄사업이었지만, 새로운 사업기반은 교육관련 사업이었으며, 이는 현재의 대성이 추진하는 문화산업과 정서적인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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